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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인 / 개발 이야기 – 버터와 밤이

안녕하세요, 캣 소사이어티입니다.

이번에는 주요 캐릭터 중, 버터와 밤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 합니다.

작년에 한 인터뷰([인터뷰] 안 들키면 OK, 아슬아슬 여관 운영 – ‘던전 인’)에서 이야기했듯이, 버터와 밤이는 저희와 함께 살고 있는 친구들을 모티브로 삼은 캐릭터입니다. 실제 이름도 버터와 밤이에요.

사실, 스튜디오 로고에도
버터와 밤이가 있어요.

일단은 게임 플레이부터.

<던전 인> 개발 과정에서 가장 우선시했던 부분은 핵심 게임 플레이였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지는 그 뒤에 고민할 문제였어요. 언제나 ‘게임 플레이가 게임에서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게임의 중심이 단단히 자리 잡기 전까지는 이야기로 인해 게임 플레이가 변하는 것을 가능한 한 지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종이로 만든 프로토타입으로 기본 아이디어를 확인해 본 후, 시뮬레이터를 만들어 어느 정도 테스트를 거친 후에야 이야기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했어요.

종이로 만들었던 2번째 프로토타입.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까?

“이중 영업을 들키지 않고 여관을 잘 운영해 보자!”라는 큰 뼈대는 세워져 있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채워야 하는데, 어떤 이야기를 채워야 할까요?

우선 진중한 분위기는 피하고자 했습니다.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가벼운 블랙 코미디를 다루고 싶었어요. 그리고 특별한 주제 의식을 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럴 깜냥이 안되는 걸요! 그냥 유쾌한 캐릭터들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만나, 게임이 끝날 때까지 겪는 이런저런 해프닝들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다음에는 주요 캐릭터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버터와 밤이가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연할 것 같아요(…). 아무튼, 버터와 밤이가 등장을 하지만 주인공은 아닙니다. 주인공의 가장 큰 조력자이죠. <던전 인>의 주인공으로는 사라(그때는 이름 없이 그냥 ‘주인공 소녀’)를 정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사라와 버터, 밤이의 기본 성격과 관계를 정리할 차례입니다. 아무래도 실제 모델이 있다 보니, 두 고양이의 실제 성격과 관계(우리까지 포함한)를 반영해 보았습니다. 사라(우리)를 잘 따르고, 때론 얄궂기도 하지만, 그래도 든든한 힘이 되는 버터. 그리고 겁이 많고 소심하면서 오직 형(버터) 바라기인 밤이.

자,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정을 짜 봅시다.

일단, 여관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생초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거예요. 그리고 여관을 지을 돈은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할까요?

첫 설정에서, 사라는 여관을 운영하는 부부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버터가 찾아와 사라에게 숨겨진 가족사를 이야기해 줍니다. 사라에게는 사실 큰 상단을 운영하는 친할아버지가 있었고, 애타게 손녀를 찾고 있었다고 말이죠. 여차저차 해서 버터와 함께 할아버지의 저택으로 돌아가고, 손녀임을 확인한 뒤 정식 상속자로 인정받게 되는 날! 할아버지의 상단이 갑작스럽게 망하고 맙니다. 적대적 M&A 방식으로 상단을 키워오다 보니, 할아버지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많았거든요. 할아버지는 결국 충격으로 쓰러진 후 사망하고, 사라는 빚만 물려받고 맙니다. 가솔들이 다 떠나가는 와중에 버터만이 남아 사라를 돕기로 했고, 버터를 따르던 밤이도 함께 남아 사라를 돕기로 합니다. 그리고 어쩌고저쩌고.

진중하네요. 이러다 설정에 잡아먹혀 버리고 말겠어!!

괴리감

“우리의 버터와 밤이는 이렇지 않아!!”

처음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 때는 참조할 모델이 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지만, 다시 이야기의 방향을 잡는 과정에서 모델이 있다는 게 점차 제 발목을 잡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방향으로 구성한 이야기를 따라가자니 버터와 밤이의 행동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실제 성격대로 이야기를 전개하자니 이야기가 영 이상하게 흘러간단 말이지요. 아예 말이 안되는 경우도 있구요.

그렇습니다. <던전 인>에서의 버터와 밤이는 지금 위에서 낮잠 자고 있을 버터와 밤이가 아닙니다. 제가 부족하다 보니, 그 차이를 깨닫고 인정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어요.

게임의 볼륨을 정하고, 이런저런 시스템을 추가하면서 전체 플롯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버터와 밤이의 성격도 변경합니다. 버터는 좀 더 능글맞고 유쾌해졌고, 밤이는 신중하되 버터를 마냥 따르지만은 않습니다. 버터가 장난꾸러기 이미지라면, 밤이는 셋 중 유일한 정상인 이미지를 갖습니다. 재미있어 보이는 일에 신이 나 급발진하는 버터의 제동을 걸어주기도 하고, 돈 되는 일이라면 눈이 뒤집히는 사라를 뜯어말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역할 분배를 다시 하고, “투자를 받아 기간 내 성과를 내야 한다”라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바꾸니,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쓸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라가 주인공

작년 BIC 데모 버전에서 BIC용 이야기를 임시로 만들어서 넣다 보니,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사라가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버터와 밤이가 주인공 같았어요. 티격태격하는 버터와 밤이를 중재하는, 유치원 선생님 같은 사라… 정식 이야기에서는 좀 더 주인공다운 사라를 보여드리겠어요! 버터와 밤이도 여전히 존재감을 뽐내겠지만, 사라도 지지 않을 겁니다!

– 고민진